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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06 절대 포기해선 안된다

절대 포기해선 안된다

카테고리 없음 2011. 12. 6. 14:02 Posted by 킁한국인

                     절대 포기해선 안된다.                          -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 한창수 교수


 우리 대학이 졸업하기 어렵다는 惡名(악명)은 잘 알려져 있다. 이 惡名은 단순한 체감이 아니다. 통계수치가 있다. 100명이 편입학한다면 대략 20여명이 졸업을 한다는 통계이다. 그러니까 5명이 입학하면 1명만 졸업하고 나머지 4명은 중간에 포기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졸업하기 어려운 대학일 것이다.  

 입학은 쉽다. 수능 시험도 없고 등록금도 싸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 7-8년전 만 해도 입학이 쉽지 않았다. 명문 경기여고를 나왔는데도 내신성적이 낮아 불합격한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志願生(지원생)이 적어지고 또 편입학정원이 늘어 나면서 누구나 원서만 내면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졸업률은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20% 정도. 우리 대학은 원래 5년제이었다가 현재의 4년제로 바뀌었다. 그래서 학기당 수강과목이. 1과목씩 늘어 났다. 학업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상식에 따르면 부담이 늘어났으니까 졸업률도 감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 역시 20% 정도이었다.  그래서 교양 필수이던 지긋지긋한 영어 과목을 선택으로 바꾸었다. 졸업시험도 폐지했다. 1학년 1학기 7개 수강과목을 5개로 줄였다.  상식에  따르면 졸업률이 대폭 증가해야 한다. 하지만 큰 차이가 없었다. 학업부담이 늘어나든, 줄어들든 졸업률은 역시 20%, 학사제도가 바뀌어도, 지역학습관을 지역대학으로 바꾸어도, 튜터제도를 두어도, 라디오 강의를 인터넷 강의로 바꾸어도, 방송대 케이블 채널이 생겨도  20%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정말 魔(마)의 20%이다. 언제나 80%가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중문과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유아교육과, 교육과에 이어 우리대학에서 3위로 대략 25%정도이다. 그러니까 자격증이 없는 학과에서는 1등이다. 일부 학과는 15% 수준에 불과하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대학 개교이래로 30여년 간 졸업한 사람은 대략 모두 35만명 정도이다.  반면에 중간에 포기한 선배들은 놀랍게도 대략 모두 200만여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5% 정도이며, 성인인구를 2천만명으로 잡으면 무려 10%에 달한다. 그러니까 길에 오가는 성인들 중에서 10명에 1명은 우리대학에 입학했다가 중간에 포기했다는 놀라운 통계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 중간포기선배들이 모두 졸업했다면 우리나라의 국력이 크게 신장되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보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포기한 선배들은 가슴에 일말의 한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마 남들에게 방송대학을 포기했다고 맘놓고 말하지도 못하면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아마 금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 현상은 어김없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1학년 1학기가 지나서 2학기 출석수업이 되면 보이지 않는, 말없이 사라진 학우가 거의 절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1학기가 지난 2학년이 되면 나머지 중에서 또 10-20%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대학 입학이 아무리 쉽다고 해도 나이가 좀 들어서 다시 공부하려고 결심하여 원서를 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등록금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그리 적은 돈도 아닌데,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체면이 서지 않을 텐데, 그리고 살아가면서 많은 회한을 느낄 텐데--- .

 공부할 시간을 내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어려운 줄 알고 왔을 터인데, 시험문제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중간시험과 출석수업 점수는 참가하여 웬만큼만 하면  30점 만점에 24점이 나오고 기말시험은 부담이 크기는 하지만 ‘4개중 1개 찍기’이고 기출문제에서도 많이 나오는데---. 나를 포함하여 누구도 魔의 20%를 30% 그리고 그 이상으로 높이기 위한 묘방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표정만 짓고 있다. 체념하는 쫑궈 사람들이 잘 쓰는 말로 ‘메이요우빤파(沒有辦法)’, 임금님이 와도, 독재자가 와도, 슈퍼맨이 와도 역시 메이요우빤파.

 남아 있는 학우들은 모두 떠나버린 그들을 정말 안타까워한다. 그들이 떠나서 무슨 손해가 돌아오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포기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능력과 강인한 의지가 입증되는 것이다. 떠나버린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은 人之常情(인지상정)이다.   

   

 나는 1학년 1학기 또는 2,3학년으로 편입하여 1학기에 주목하고 있다. 처음 1학기에 떠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이 때문이다. 떠나는 80% 중에서 처음 1학기에 떠나는 사람이 40%에 육박하는 것이다.

 좀더 상세히 살펴보자. 이들은 1학기를 마치고 나서, 중간시험을 보고, 출석시험과 기말시험마저 보고나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중간시험도 보기 전에 떠난다. 이에 대한 분명한 통계는 없다. 나는 70% 이상으로 보고 있다. 거의 입학하자마자 포기하는 것이다.


 신입생은 처음 다음과 같은 행도과 마음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학원서를 내고,  합격통지서를 받고,  등록금을 내고 다음에 서점에 가서 교재와 테이프를 받아 비닐 봉다리에 넣어 집에 온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약간의 다리 품만 팔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집에 오니 막막함이 밀려 온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학과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아도 별 신통한 말이 보이지 않는다. 학사일정도 참말로 복잡하다. 중간시험, 출석수업과 시험, 과제물이 어떻고, 시험범위와 방식이 어떻고, 시험배점이 어쩌구 저쩌구, 사회생활 못지 않게 대단히  복잡하다. 벌써부터 ‘괜히 시작했나?’ 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한다는 것은 원래가 골치가 아픈 일이지’라고 위로하며 교재를 펴 본다. 그리고 읽어 본다. 내가 교양있는 사람인데 교양과목을 3개 과목이나 들어야 한다니 기가 막히다. 쫑꾹말 배우러 왔지 교양 쌓으러 입학했나? 하지만 참을 忍(인), 인쇄잉크 냄새가 펄펄 풍기는 교재를 잡아든다. 참 읽는 김에 중요한 대목에 밑줄을 쳐야지, 빨간 색연필이 어디 갔나?

 정말로 오래 간만에 책이라는 물건을 읽어 본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그래도 계속 읽는다. 첫 페이지를 넘긴다. 둘째 페이지로 넘어 갔는데 첫 페이지에 뭐가 써 있는지 다 까먹었다. 그래도 참을 忍. 하지만 어디에다 밑줄을 쳐야 할지 모르겠는 걸 어떡하나?  이해가 되는 구절이 나오면 반갑다. 나머지는 내용이 무언지 가물가물하다. 깊은 진흙 수렁에 한발국씩 빠져 내려가는 것 같다. 체질적으로 대학공부가 맞지 않는 것인가? 교재를 읽지 않으면 신체가 분명 정상 상태인데 읽으면 비정상으로 변하는 기분이 든다.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가족에게 말하기도 쑥스럽다. 초급중국어1 교재를 펴 보아도 온통 알파벹과 시커먼 漢字 투성이, 더욱이 간체자라니, 이 역시 골치 아프군--.

 그래서 교재를 들고, 컴퓨터를 키고 애써 강의를 들어 본다. 좀 낫지 않을까? 교수라는 사람이 목소리를  깔고 있다. 점잖고 학식있는 사람이겠지, 그런데 어디에다 ‘밑줄 쫙’ 치라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친절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잠깐 딴 생각을 하면 어느 부분을 강의하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덤벙덤벙 건너 뛴다. 대충 요약하는 것 같다. 빌어먹을---.

 그리고  과제물 시험이라니, 자료를 수집하여 집에서 써서 내는 것이란다. 인터넷 댓글 빼 놓고 문장이라는 것을 써 본 적이 없는데, A4용지 5장을  어떻게 채우라는 것인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  챙피 당하느니 일찌감치 관둬버려----. 거금 40만원을 포기해---. 


 말하자면 공부라는 것을 정말 오랜만에 처음으로 시도해보고 試鍊(시련)이라는 암초에 부딪친 것이다. 마음의 쓰라린 상처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갈 채비를 하는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고 평범하게 말하지 않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사람들도 모두 1학년 때에는 막막함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나만 막막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렇다. 누구나 모두 그리고 예외없이 교재를 읽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아무도 그 사실을 고백하지 않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뿐이다. 누구도 모두 그리고 예외없이 과제물을 쓰지 못한다. 이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랬다.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글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책을 한번 읽고 이해할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입학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능력을 가지기 위해 입학한 것이다. 또 우리는 과제물을 멋지게 쓸 수 잇는 능력이 있어서 그 능력을 써 먹을려고 입학한 것이 아니다. 그 능력을 가지기 위해 입학한 것이다. 읽고 쓰는 능력은 인간의 능력 중에서 가장 고귀한 능력 중의 하나이다. 이런 능력이 있으면 평생학습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예외없이 이런 시련에 부딪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근거없는 열등감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은 양심적인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무능을 자각하고 고만 두었음으로,

 그럼 무능을 자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똥뱃짱으로 버티고 졸업까지 하는 사람들은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받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성급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가면 능력이 갖추어질 것이라고 자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야 말로 자신의 이력서와 역사를 바꾸고 나아가 자신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국가의 이력서를 바꾸는 사람들이다. 학업에 대한 열정은 고귀한 것이다. 우리나라 총 인구의 5%만이 평생학습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다. 그중에서 20%만이 똥뱃짱으로 ‘천천히 해 나가면 해뜰 날 있겠지’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4년으로 안되면 5년, 5년으로 안되면 6년인들 어떤가?


 그래도 일하면서 혼자서 공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학생회와 스터디에 가서 참여하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해도 바로 익숙해 질 것이다. 거기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선배들은 여러분의 막막함을 해소시켜줄 것이다. 선배들 역시 막막함의 경험자이기 때문에 그것의 정체와 해결방법을  잘 알고 있다. 선배들은 공부하고 시험을 치루는 모든 갖가지 방법을 즐거운 마음으로 전수해 줄 것이다. 학생회와 스터디는 우리 사회 전체에서 유별난 곳이다. 나이와 종교와 출신과 직업을 따지지 않는다. 모든 행동과 마음을 공부와 시험에 집중시켜 준다. 1년만 야학당 같은 스터디에 몸담고 있으면 情도 들게 될 것이다. 성급하지 말자. 절대 포기해선 안된다.